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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강남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부시게 좋은 날씨였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강남의 비는 감정이 표현한다고들 하는데 혹시 우리 동남기행 취재팀이 떠난다고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파에서 취재하는 동안 우리는 영파의 고래문화 및 백여 년의 찬란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波”“??裁?”의 정신에 감동되고 말았다.
“波” 은 그 명성이 국내뿐만 아니라 그 발자취는 전 세계에서 널리 퍼져있어 영파사람이 있는 곳마다 “四名公所”“영파동향회”
등의 집단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의 영파동향회는 매주에 한 번씩 모이며, 40여 년 동안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고 그들의 후손들 역시 그 모습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화교상인, 홍콩, 대만 등의 동포들은 7.3만 명이나 되며 홍콩, 대만,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등 50여 개의 나라와 지역에 널리 퍼져있다. 또한 세계각국에서 경영에
능숙한 “영파방” 기업가들은 무수히 많다. 보옥강(진해인), 원래 상해의 어느 은행에서 출근하다가 홍콩에
온 후 계속 은행업과 해상운송업을 운영하다가 1955년에 77만 달러로 8,200톤의 낡은 오일탱크를 하나
사서 해상운송업을 창립하였으며, 20년 동안 고군분투하여 노력한 결과, 1980년 3월까지 오일 탱커 202대와
오일 2053만톤을 전 세계 크고 작은 항구에 20여 개의 회사 및 대리회사를 설치해놓으며 한때 전세계에서
배가 제일 많고 톤 수가 제일 많은 “선박왕”이 되었다. 홍콩 10대 갑부 중에서도 “영파방” 출신 인사가
3석이나 차지하고 있다. 영파시 상인들은 애향심을 중시여기며 동향을 도와주는 관념이 특별히 강하다. 그들은
같이 모든 곤란을 이겨나가며 같이 경영상의 위험을 방지하려 한다. 또한 영파인들은 “??而不?故土”의 특징이
있다. 영파 사람들은 옛날부터 외지에 자주 나가서 사업하였으며, 14~15살 좌우의 남성들은 친구 친척을
통해 직업을 찾아 상점 및 공장에서 실습생으로 일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다른 고향사람들은 그를 미래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곤 한다. 남자들이 고향을 떠난다고 하여도 부모들은 자식을 그리워하지만 그마음을 스스로
억제하고 자식의 장래를 막지 않는다. 보통 3년 정도의 실습하면서 많은 고생도 하지만 나중에는 성공하는
사람이 많은데, “영파방”의 유명한 인물 虞洽卿,?澄衷,秦?卿,盛??,金?痒 등은 모두 친척 및 친구들을
통하여 실습생으로 시작하여 성공한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의류를 주테마로 하는 박물관인 영파복장박물관에서 우리는 “홍방(??)”의 정신을 엿 볼
수 있다. 19세기말 영파를 5개 통상항구중의 하나로 지정한 후 수많은 서방인 및 서방물품들이 밀려들어왔고,
중서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융화하는 동시에 서방업체에 종사하는 직원과 상류층 자제들이 앞다투어 양복을 입기를
즐기던 게 당시 유행이 되어 전에 없던 양복열풍이 매우 뜨거웠었다.
소개에 의하면 그당시 상해에 거주하던 외국인중 파란눈에 파랑색, 빨간색 머리의 유럽과 미국인이 비교적 많았는데
사람들은 농담으로 그들을 “빨강머리사람 (?毛人)”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그들을 위하여 의류를
제작하는 재봉사들을 “홍방 재봉사”라고 하였다. 영파인들은 원래 영리하고 손재주도 좋아 외지에 나가서 주로
剪刀,?刀,?刀 등의 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도 많기로 상해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당시 양복을 만드는 재봉사는
주로 봉화인 및 근현인이 제일 많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원래의 상해대로(현재의 남경로)에서 양복점을 8
집이 있었는데 그 중에 봉화인이 5 집을 차지하고 있다가, 그 후에 50 여 집으로 점차 늘어나서 남경서로에서는
거의 봉화인들이 양복점을 독차지하고 있다시피 한다. 또 경극에서 “四大旦,四小旦” 이라고 이름을 지어진
8 대 재봉사 중에서 봉화인이 5명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3명은 근현인이었다. 이는 영파인이 상해시의 양복업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해인들이 자주 얘기하던
“양복을 입으려면 ?蒙 입어야 되고 코트를 사려면 王?? 사야 된다” 라는 말은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봉화, 근현은 이미 “중국 패션의 고향”으로 지정되었고 “杉杉”, “雅戈?” 등의 유명한 양복도 홍콩,
마카오, 대만 및 세계 각지 에서 잘 팔리고 있다.
가는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아련히 피어 오르는 안개 속의 면청산은 자꾸만 가까이 가서 만지고 싶은 유혹을 뿜어낸다. 아름다운 풍경에 절로 취한 채 우리 취재원들이 온주에 도착한 건 이미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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