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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일행이 유명한 안탕산에 왔다.안탕산은 동해바다에 뿌리를 박고 경치가 유달리 수려하며 “해상명산”이라는
미명과 명실상부한다고 할 수 있다. 안탕산은 산길을 열어 당나라때부터 발전하여 송나라때는 반창하였고 풍부한
문화 온축을 가지고 있다. 百岡茫茫云海, 日出天開圖畵. 안탕산이 정말 아름다워 명나라 여행가 였던 서하객(徐霞客)선생이
세 번이나 찾으러 와서 이런 감탄했다. “안탕산을 끝까지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이 선인밖에 없다”
안탕산은 정말 큰 산이다-크고 아름다운 산이다. 수많은 기이한 산과 동굴, 폭포들이 450평방 킬로의 관광
풍치 지구에서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너무 크고 예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霙峰야경은 유일무이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야경중 제일 유명한 경치는 “부부봉”이다. 밝고 맑은 달밫있는 밤에 멀리보면 긴 머리
미인이 멀리 다녀온 남편과 멋스롭게 포옹한 장면이 보이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온 관광 풍치 지구를 포위했다.
두개의 산봉우리가 거대한 조상처럼 사람앞에 우람하며 확고하게 서 있어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미미하게 느꼈다.
그 동시에 이런 신기한 자연풍경한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산봉우리 뒤에 와서 다시 “부부봉”을 감상하면
크나큰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할 것 같다. 독수리 머리가 조금 편향되어 더욱 자부심이 있는 자세로
보인다. 경치를 감상할때 “뭘 보면 뭐가 닮았다고, 뭐가 닮았으면 무엇이다”라는 원칙을 준수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해 사람의 사유가 무한한 자연에서 임의대로 유유히 노닐 수 있다. 경치가 또 많은데
하나 하나 진술할 수 없어 직접와야 그의 기이한 맛을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龍못을 묘사하려는데 어디서 시작한지 모르고 안탕산을 구경하지 않으면 세월을 헛되어 본내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탄였다. “이 산을 묘사할 수 없어…” 수필가들이 단어했다. 옛부터 지금까지 안탕산은 무수한 문객들이
수차 붓 끝으로 절단하고 몇번이나 그려내고 반복하게 묘사했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가장 일찍 안탕산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이 南朝 시인이 사영운(謝霙運)였다. 그러나 그때 사선생이 분명히 연기와 안개가 자욱하고 가시나무들이
길을 막은 “문”앞에서 뒤를 밟아 멈추어 이 산의 오의를 엿보지 못했다.
그래서 안탕산 이름을 알려진 사명이 당나라 3명 스님한테 맡겼다. 한명은 “花村 鳥語”때문에 300명 제자를
데리고 龍못을 건너 후세의 사람들이 산열린 개조로 삼아온 락거나(諾巨那)스님이고, 한명은 <山川兩戒圖>를
그리고 “南戒盡于雁蕩” 이라는 명언을 남긴 일행(一行)스님이고, 다른 한명은 “雁蕩經行雲漠漠, 龍못晏 坐雨蒙蒙”이란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 시구를 썼던 당나라 말기 貫休스님였다. “당나라때 시작하여 송나라때 반창했다”는 안탕산이
조금이나 지각했다. “오악 (五岳)”에서 자리 한 장을 필 수 있는 자그마한 곳도 못 받았다. 황금빛과
푸른 빛이 휘황찬란한 도식이 없지만 시골의 마을과 들판들이 안탕산은 자연스럽고 대범한 풍채를 가지게 만들었다.
역대 문객 선배들이 남긴 안탕산에 관한 글중 “안탕自奇, 不附五岳; 龍못所注, 別 爲一川”이라는 한마디가
사람이 동경할 여지가 줬다. 안탕산은 다른 명산과 달라 자기 독특한 품성이 있다.
일단 안탕산 풍경정신과 예술적 특징을 말하자면 사람이 망설이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웅위롭고 기이하면서
함축성이 모자라지 않다, 한가 하게 거닐면서 적막한 느낌이 없다, 깊숙하고 고요하면서도 광활하다, 험준하면서
수려하다…
안탕산은 정말크다.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 沈括이 “온주 안탕산, 天下奇秀” 라고 말했다.
이 “奇秀” 두 글자만해도 안탕산을 묘사한데 좀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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