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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특별취재보도진 TOKOREA기자 최련화기고
7월 26일 날씨 개임
돈황으로 가는 길에서
오늘 우리는 가욕관시 新城響에 위치하여있는 魏君墓로 왔다. 이 묘지는 가욕관시에서 동북방향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초보적인 탐색을 거쳐 묘지가 1400여개 매장되여있다고 추측하였다. 1972-1979년
사이에 10여개 묘지를 발굴해냈는데 대부분은 대형의 벽돌묘지였다. 구조가 독특하고 색상조화가 잘 되였으며
대부분 현실생활과 魏晋시대 하서주랑구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반영하였다. 출토한 660여개의 벽그림은
당시의 생산, 생활정황을 충분히 묘사하였으며 그 내용은 목축, 사냥, 춤, 생활용구 등 그림인데 모두 민간화공들의
손에서 나왔으며 당시의 군사두목, 당지관료 등 묘지주인의 향락생활을 반영하였으며 그들의 통치하에 변방을
지키는 전사들과 사회재부를 창조하는 농민, 목민들의 생활장면을 반영하였다. 더욱 많이는 로동인민들의 생산투쟁과
생활처지를 묘사하였다. 이러한 그림을 통하여 통치계급과 로동인민간의 관계, 한족과 서북소수민족사이 관계를
반영하였으며 여러 민족이 어울리여 서북의 역사를 개발하는것을 반영하였다. 그림에는 종교내용이 없었으며 미신적색치를
띠지 않았으며 그림형식으로 당시의 현실생활을 진실하게 기록하였다.
거기에서 참관을 마치고 우리는 돈황으로 출발하였다. 차는 일망무제한 “戈壁灘”가운데 쭉 뻗은 아스팔트길로
쏜살같이 날리였다. 나는 이때에야 처음으로 “일망무제”의 뜻을 이해하게 되였다. 이전의 일망무제는 그냥
공식적인 것뿐이였다.
우리가 가는 돈황은 하서주랑의 제일 서쪽 끝이며 청장고원의 북부 변두리지대이다. 그곳은 국가급 역사문화명성이며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년의 역사가 있다. 감숙과 청해, 신강 3개성의 交界處에 위치하여 있으며 역사에서
河西四稙중의 하나이다. 돈황의 인구는 15만명이고 면적은 3만여km2이다. 돈황은 고산의 영향을 받아 일조가
충분하다. 년일조시간이 3200시간에 달하며 년 평균기온이 9.3도이고 7월달 평균기온은 24.7도이다.
건조하고 비가 적으며 년 평균강우량은 39.9㎝이다. 그 가운데서 여름강우량이 63.9%를 차지하고 겨울강우량은
겨우 7.5%를 차지한다. 년 평균증발량은 2400㎝ 달하며 사계절이 분명하고 겨울이 여름보다 길다. 밤과
낮 기온차이가 크며 년기온차이가 34도에 달한다.이곳은 5월달부터 10월달까지 제일 좋은 관광시기라고 한다.
돈황에는 주요하게 안서박물관, 백마탑, 돈황고성, 돈황민속박물관, 돈황시박물관,신기루,鳴沙山,月牙泉,莫高窟,三危聖境,서천불동,서운관,양관,양관국가급사막삼림공원,옥문관,옥문관야단마귀성
등등의 관광지가 있다.
오는 도중에 우리는 “西氣東輸”공정을 보았으며 풍력발전소를 보았다. 나는 시야와 멀지 않는 곳에 아주 큰
은색나는 강 같은것이 보이였다. 나무가 띠염띠염 보였으며 서북에서 늘 보는 백양나무 같았다. 백양나무 사이로
낮다란 집이 보였으며 사람그림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사막가운데 무슨 강이 저렇게 있는가하고 기사한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신기루라고 하였다. 너무도 행운스러웠다. 다시 똑똑하게 보려고 눈을 크게 떴으나 차가
빨리 달리면서 점점 멀어져가다가 없어졌다. 한눈에 다 담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기사의 말에 의하면 돈황에서부터
양관, 옥문관으로 가는 길에서 파도가 일어나는 “바다”와 높은 “산”, 정연한 건축물, 질서있는 “도시”를
볼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나타났다 없어졌다 한다고 한다.
기재에 의하면 신기루는 근대에 지구물리학과 광학이 발달한후 사람들이 이것이 대기중에서 광선의 굴절작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일종 자연현상이라는것을 발견하였다. 공기층의 밀도가 비교적 큰 차이가 있을때 먼곳의 광선이
밀도가 부동한 공기층을 지나오면서 굴절이거나 전반사현상이 생긴다. 이때 공중에서 혹은 지면아래에 먼곳의
물체의 그림자를 볼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여름의 연해지대거나 사막에서 많이 발생하는 원인은 바다우와 사막우에서
해빛의 복사에서 상하부동한 온도가 산생하여 부동한 밀도의 공기층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 하늘은 연한 푸른색으로 가볍게 뜬 송이송이의 흰 구름을 받쳐주고 있었다. 구름은 천태만상이여서 더욱더
가관을 이루었다. 어떤 구름은 물고기같았고 어떤 구름은 양 같았으며 어떤 구름은 병아리 같았다.
돈황은 “고대비단의 길”의 중요한 도시이며 중국고대역사상의 명주이다. 13세기 이후 점차 쇄락해지면서부터
20세기 莫高窟藏經洞의 발견으로 하여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1986년에 “중국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되였다. 1998년에 “중국우수관광도시”의 첫 명예를 가지였다. 몇세기 동안의 흥성과 쇄락을 거쳐 5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걸어왔으며 이 도시에 찬란한 문화와 문화유적, 정밀한 石窟예술, 신비한 산과 물을 부여해주었으며
이 고성으로 하여금 휘황하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