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첫키스 3탄 7월8일


서부특별취재보도진 TOKOREA기자 최련화기고

오늘 우리는 훅호호트시 선전부문과 연계를 하여 오전에 시정부 사무실에서 훅호트 시위선전부 부장님의 당지에 대한 시정건설과 두개문명건설의 정황에 대하여 소개하는것을 들었다.
잠시후 우리는 투자액이 1억되는 본지의"東西河"--"하러친강"과"자다카하"의 水道관리 시공현장을 취재하였다. 西河는 훅호트시정부 새아파트와 500미터가안되게 사이를 두었으며 河道군데군데가건설중에 있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분수로 건설하는데 높이를 168미터로 한다고 한다.
훅호호트시 용수골라고 불리우는 허러친하(강이름)은 낡은 성에 위치하였으며 옆은 훅호트시1중학교이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기자 일행이 취재할때 마침 거기에서 시인민대표단을 안내하고 있는 부시장-----왕강을 만나서 유관되는 상세한 정황을 소개받았다.
유명한 "大召"는 여기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내몽골의 낡은 훅호트시에 위치하였으며 몽골어로 "伊克召"라고 하는데 "큰 묘"라는 뜻이다. 한어 이름은 원래 弘慈寺였는데 후에 无量寺로 고치였다.
명조시기 릉경(隆慶)년간 (기원1567-1572)에 土默特라는 몽골부락의 주인 阿勒坦汗(明조시기 "俺答"라고 불럿음)이 "순의왕"으로 된후 그는 부인 三娘子와 함께 낡은 훅호트시와 弘慈寺를 다시 건설하여1580년(明万歷八年)에 다 완성하였다.
弘慈寺안의 석가모니상은 은으로 되여있다고 하여 은불사라고도 한다. 청조 강희때 (1662년---1722년)에 다시 확장건설하여 大殿을 東琉璃瓦로 다시 깔고 또한 황제절로 되였다.
大召는 大殿를 제외하고 거의 한족(漢族)식절로 되여있었다. 大殿은 늘 보는 藏漢式喇麻廟식이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앞부분은 두층으로 된 大殿이고 아래층은 복도이다. 가운데는 經堂이고 뒤부분은 佛堂이며 佛堂안의 가운데에 銀鑄불상을 모시였다. 불상앞에는 나무로 조각된 한쌍의 황금색나는 용이 나무를 감고 있었고 궁전 앞에는 속이 비여진 한쌍의 돌사자이다. 召內에는 또 山門、過殿、東西配殿、九間樓 등 건축이다.
大召의 종교적 문물은 아주 많다. 그중 은불상, 용조각상, 벽화는 "大召三絶"라고 불리운다.
오후에 당지의 건설중에 있는 蒙古風情園을 참관하였다. 3.4억원을 투자한 이 風情園은 계획한 시공시간이 3개월좌우이지만 주제가 몽골민족의 풍속을 위주로 하여 개발하며 계획에 의하면 부근의 昭君墓하고 연결된다고 한다. 후에 우리 취재조 일행은 시건설위원회 주임 邸明德을 취재하였다.

  Copyright(c) 2005 einmin.com  E-mail:einmin@einmin.com
纪行咨询处: 韩国: 82-02-569-1335    中国: 86-10-84721688